중국은 어떻게 게임 강국이 되었나, 짝퉁에서 세계 정복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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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짝퉁 천국이었던 중국이 이제 세계 게임 시장을 호령한다. 텐센트의 투자 전략부터 호요버스의 글로벌 히트, 검은신화: 오공의 AAA 신화까지. 그 이면의 996 노동 문화도 함께 들여다본다.

2025년,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게임 시장에 올랐다. 시장 규모 532억 달러. 불과 20년 전만 해도 중국은 해외 게임을 베끼는 '짝퉁 천국'이었다. 그런 나라가 어떻게 원신, 검은신화: 오공 같은 글로벌 히트작을 만들어내는 게임 강국이 됐을까.

이 글에서는 중국 게임 산업의 성장 과정을 세 단계로 나눠본다. 해외 게임을 수입하던 시절, 자체 버전을 만들던 시절, 그리고 세계를 정복하는 지금. 그 이면에 있는 살인적인 노동 문화까지, 빛과 그림자를 함께 들여다본다.

1단계: 수입과 퍼블리싱의 시대 (2000년대~2010년대 초)

던전앤파이터, 중국에서 역대 최고 매출 게임이 됐다
던전앤파이터, 중국에서 역대 최고 매출 게임이 됐다

2000년대 중국 게이머들의 선택지는 한국과 미국 게임이었다. 넥슨의 던전앤파이터(던파)는 텐센트가 2008년 중국 서비스를 시작한 뒤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누적 매출 220억 달러 이상, 역대 최고 수익 게임 타이틀을 차지했다. 카트라이더, 메이플스토리 같은 한국 게임들도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블리자드 게임도 빼놓을 수 없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는 중국에서 수백만 동시 접속자를 기록했고, 스타크래프트는 PC방 문화의 상징이었다. 이 시기 텐센트와 넷이즈는 해외 게임의 중국 퍼블리셔 역할에 머물렀다. 자체 개발보다는 라이선스와 운영으로 돈을 벌었다.

하지만 단순 수입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중국 정부의 게임 심의 규제, 문화적 차이, 그리고 해외 업체와의 수익 배분 문제가 걸림돌이었다. 중국 게임사들은 점차 '우리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2단계: 자체 버전의 시대 (2015년~2019년)

왕자영요, 리그 오브 레전드를 모바일로 재해석했다
왕자영요, 리그 오브 레전드를 모바일로 재해석했다

2015년, 텐센트가 라이엇 게임즈를 완전 인수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LoL)의 주인이 된 것이다. 그리고 같은 해, 텐센트 산하 티미 스튜디오는 '왕자영요(Honor of Kings)'를 출시했다. LoL을 모바일에 최적화한 게임이었다. 중국 내수 시장을 겨냥한 전략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왕자영요는 하루 평균 1억 명이 플레이하는 괴물 게임이 됐다. 2020년 기준 연매출 25억 달러 이상. 세계에서 가장 많이 플레이되는 모바일 게임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텐센트는 해외 게임을 '학습'한 뒤 자국 시장에 맞게 재창조하는 공식을 완성했다.

비슷한 패턴이 반복됐다. 배틀그라운드(PUBG)가 뜨자 텐센트는 모바일 버전 '게임포피스(Game for Peace)'를 만들었다. 원본을 뛰어넘는 매출을 올렸다. 이 시기 중국 게임사들은 '복제'가 아닌 '현지화된 재창조'를 배웠다. 그리고 그 노하우는 곧 세계 시장 공략의 밑거름이 됐다.

3단계: 글로벌 정복의 시대 (2020년~현재)

명조, 호요버스의 뒤를 잇는 쿠로게임의 도전
명조, 호요버스의 뒤를 잇는 쿠로게임의 도전

2020년 9월, 미호요(현 호요버스)가 원신을 출시했다. 오픈월드 액션 RPG에 가챠 시스템을 결합한 게임이었다. 출시 2주 만에 매출 1억 달러 돌파. 2024년까지 누적 매출 50억 달러를 넘겼다. 모바일, PC, 콘솔을 아우르는 크로스플랫폼 전략도 주효했다.

원신의 성공은 중국 게임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 '중국산 = 저품질 복제품'이라는 편견이 깨졌다. 이후 호요버스는 붕괴: 스타레일, 젠레스 존 제로를 연달아 히트시켰다. 쿠로게임의 명조도 2024년 글로벌 시장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서브컬처 가챠 장르에서 중국은 이제 절대 강자다.

그리고 2024년 8월, 게임사이언스의 검은신화: 오공이 등장했다. 출시 3일 만에 1,000만 장 판매. 현재까지 2,500만 장 이상 팔렸다. 중국 최초의 글로벌 AAA 대작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서유기를 소재로 한 이 게임은 중국 문화의 소프트파워 수출이라는 의미까지 갖는다.

성공 비결: 거대 자본과 내수 시장

텐센트 본사, 중국 선전
텐센트 본사, 중국 선전

중국 게임 산업의 성장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 거대 자본이다. 텐센트의 시가총액은 4,500억 달러 이상. 세계 최대 게임 회사다. 라이엇, 슈퍼셀, 에픽게임즈 등 글로벌 스튜디오에 투자하며 노하우를 흡수했다. 넷이즈, 미호요도 수조 원대 개발비를 투입할 여력이 있다.

둘째, 7억 명의 내수 시장이다. 실패해도 국내에서 본전을 뽑을 수 있다. 이 안전망이 과감한 투자를 가능하게 한다. 원신 개발비는 1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 한국이나 일본 중소 개발사는 꿈도 못 꿀 규모다.

셋째, 모바일 퍼스트 전략이다. 중국은 PC보다 모바일 게임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 환경에서 단련된 모바일 게임 개발 노하우가 글로벌 시장에서 통했다. 원신이 모바일에서도 완벽하게 작동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정부 규제가 오히려 품질을 높였다?

중국 게임 판호 규제, 수천 개 업체가 문을 닫았다
중국 게임 판호 규제, 수천 개 업체가 문을 닫았다

역설적으로, 중국 정부의 게임 규제가 품질 향상에 기여했다는 분석도 있다. 2021년 중국 정부는 미성년자 게임 시간을 주 3시간으로 제한하고, 신규 게임 판호(출시 허가) 발급을 대폭 줄였다. 수천 개의 중소 게임사가 문을 닫았다.

살아남은 업체들은 '양보다 질'로 전략을 바꿨다. 어차피 많은 게임을 낼 수 없으니, 한 게임에 자원을 집중하는 게 낫다는 계산이었다. 검은신화: 오공의 개발사 게임사이언스는 7년간 이 게임 하나에 올인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규제의 부작용도 있다. 많은 개발자들이 해외로 떠났고, 창의적인 인디 게임 생태계는 위축됐다. 폭력성, 정치적 민감성 등 심의 기준도 까다로워 글로벌 버전과 중국 버전이 다른 경우가 많다.

996의 그림자: 성공 뒤의 어두운 이면

996 문화, 과로사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996 문화, 과로사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화려한 성공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996'이라 불리는 살인적인 노동 문화다.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 6일 근무. 중국 테크 업계의 악명 높은 관행이다. 게임 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출시 전 크런치 기간에는 이보다 더한 '007'(0시부터 0시까지, 주 7일)도 흔하다.

2021년, 텐센트의 한 직원이 과로로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바이트댄스, 빌리빌리 등 다른 테크 기업에서도 비슷한 비극이 이어졌다. 검은신화: 오공의 성공 뒤에도 개발진의 혹독한 크런치가 있었다는 보도가 있다. 중국 게임 산업의 성장은 개발자들의 건강과 삶을 갈아 넣은 결과이기도 하다.

최근 중국 정부가 996을 불법이라고 선언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만연하다. '자발적 초과근무'라는 이름으로 암묵적으로 강요된다. 게임 개발자들의 번아웃과 이직률은 여전히 높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이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마치며: 공과 수가 바뀌었다

10년 전만 해도 중국은 던파, 카트라이더, 메이플을 수입하던 나라였다. 지금은 원신과 검은신화: 오공을 수출한다. 한국이 BM 최적화에 집중하는 사이, 중국은 글로벌 히트작을 만들어냈다. 공과 수가 바뀌었다.

996 문화나 정부 규제 같은 리스크는 여전하다. 하지만 자본 규모와 성장 속도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제 한국 게임 산업은 선두가 아니라 도전자 입장이다. 그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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