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그나로크, 2026년에도 1위입니다
2002년 출시, 2026년에도 앱스토어 1위. 24년간 글로벌 서비스 중인 라그나로크 IP의 역사.
2002년, 한국 온라인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게임이 등장했다. '라그나로크 온라인'. 귀여운 2D 캐릭터가 3D 배경 위를 뛰어다니는 이 게임은 출시 직후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60여 개국에 서비스되는 글로벌 MMORPG로 성장했다.
하지만 라그나로크의 역사는 2002년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 뿌리는 2000년 출시된 싱글 RPG '악튜러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 청년 개발자의 꿈에서 시작된 이야기, 그리고 그 꿈이 만들어낸 유산을 되짚어본다.
악튜러스: 모든 것의 시작 (2000)
1990년대 중반, 서강대 수학과를 중퇴한 청년 김학규는 게임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며 꿈을 키웠다. 그의 꿈은 언젠가 자신만의 RPG를 만드는 것이었다. 1998년, 그는 학원에서 가르친 능력 있는 학생들을 모아 '그라비티 소프트'를 설립했다.
원래 목표는 MMORPG였다. 하지만 당시 기술력과 인력으로는 불가능했다. 결국 싱글 RPG로 방향을 틀고, 손노리의 투자를 받아 개발을 이어갔다. 2000년 12월, 수년간의 연기 끝에 '악튜러스'가 세상에 나왔다.
악튜러스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기술을 선보였다. 자체 개발한 'GFC 엔진'은 2D 캐릭터와 3D 배경을 자연스럽게 조합했다. 판매량은 대박 수준은 아니었지만, 음악과 스토리는 큰 호평을 받았다. 특히 SoundTeMP가 담당한 OST는 게임을 넘어 독자적인 팬층을 형성했다.
이 게임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은 기술과 팀이었다. GFC 엔진은 곧바로 다음 프로젝트의 기반이 되었고, 악튜러스를 함께 만든 팀은 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갔다.
라그나로크 온라인: 글로벌 히트의 탄생 (2002)
2000년 4월, 그라비티 소프트는 한국게임제작협회 회장 김정률에게 인수되며 (주)그라비티로 법인화했다. 김학규와 팀원들은 드디어 원래의 꿈이었던 MMORPG 개발에 착수했다. 프로젝트명은 '라그나로크 온라인'.
2002년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라그나로크 온라인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귀여운 2D 캐릭터, 자유로운 직업 시스템, 그리고 SoundTeMP의 명곡들. 이 조합은 한국을 넘어 일본, 대만, 동남아, 유럽, 북미까지 퍼져나갔다.
함께 사냥하고, 함께 성장하다
라그나로크 온라인이 전 세계에서 사랑받은 이유는 단순히 귀여운 그래픽 때문만이 아니었다. 이 게임은 '함께 플레이하는 재미'를 극대화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파티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라그나로크는 파티를 맺으면 경험치 보너스가 붙었다. 2인 파티부터 20%의 추가 경험치가 주어졌고, 인원이 늘어날수록 보너스도 커졌다. 혼자 사냥하는 것보다 함께할 때 더 빨리 성장하는 구조였다. 자연스럽게 유저들은 파티를 찾았고, 그 과정에서 커뮤니티가 형성됐다.
직업 간 역할 분담도 파티 플레이를 필수로 만들었다. 프리스트는 힐과 버프로 파티를 지원하고, 나이트는 전방에서 몬스터를 끌어모으며, 헌터와 위저드는 뒤에서 화력을 쏟아냈다. 혼자서는 가기 힘든 던전도 역할이 맞는 파티원들과 함께라면 공략할 수 있었다. '프리스트 구함', '파티원 모집'이라는 외침은 프론테라 광장의 일상이었다.
직업 시스템도 독특했다. 베이스 레벨과 잡 레벨이 분리되어 있어, 스킬 투자에 따라 전혀 다른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나만의 빌드'를 연구하는 재미가 있었다.
카드 시스템은 라그나로크만의 시그니처였다. 몬스터를 잡으면 낮은 확률로 카드가 드롭되고, 장비에 장착하면 특수 효과가 부여됐다. 희귀한 MVP 카드는 천문학적인 가격에 거래되며 유저들의 사냥 목표가 됐다.
공성전: MMORPG 최고의 콘텐츠
라그나로크 온라인의 진정한 꽃은 공성전(GvG)이었다. 매주 주말, 길드들은 성을 놓고 전쟁을 벌였다. 성 안의 '엠펠리움'을 파괴한 길드가 성주가 되는 방식이었다. 수십, 수백 명이 충돌하는 대규모 전투에서 프리스트의 힐이 전선을 지탱하고, 위저드의 스톰 거스트가 적을 쓸어버렸다.
성을 차지하면 희귀 아이템을 얻을 수 있었지만, 진짜 보상은 '우리 길드가 저 성을 점령했다'는 자부심이었다. 서버에서 이름을 날리는 것, 그것이 공성전의 본질이었다.
라그나로크의 성공은 그라비티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회사는 2005년 나스닥에 상장되었고, 한때 5,000억 원에 달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다만 이 시점에 김학규와 초기 개발진은 이미 그라비티를 떠난 상태였다.
창조자의 퇴장과 새로운 시작
라그나로크가 상용화된 직후, 김학규와 경영진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김학규는 게임 완성도를 더 높이고 싶어했지만, 회사는 상용화를 서둘렀다는 설이 있다. 2002~2003년, 김학규를 비롯한 핵심 개발진이 회사를 떠났다.
김학규는 한빛소프트의 투자를 받아 'IMC Games'를 설립했다. 2006년 출시된 '그라나도 에스파다'는 '3인 동시 조작'이라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기대만큼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2015년, 김학규는 '라그나로크의 정신적 후속작'을 표방한 '트리 오브 세이비어'를 출시했다. 2D 캐릭터와 3D 배경, SoundTeMP의 음악까지 겉모습은 라그나로크의 DNA를 이어받았다. 하지만 버그와 서버 불안정, 최적화 실패가 겹치며 '똥나무'라는 조롱을 받았다. 그래픽과 음악은 훌륭했지만 게임 시스템의 완성도가 부족했다.
SoundTeMP: 20년을 관통하는 선율
악튜러스와 라그나로크 온라인의 OST는 게임 음악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 뒤에는 'SoundTeMP'라는 팀이 있었다. 1992년 김학규의 아마추어 게임 제작팀에서 시작된 이 음악 집단은 한국 최초의 게임 음악 전문 회사가 되었다.
특히 라그나로크 온라인의 OST는 SoundTeMP를 세상에 알린 결정적 계기였다. 인터뷰에 따르면 '지난 8년간 작곡해서 번 수익보다 이 게임 작곡으로 벌어들인 돈이 더 많다'고 할 정도였다. Theme of Prontera, Streamside 같은 곡들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유튜브에서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SoundTeMP의 음악은 라그나로크를 떠나서도 살아남았다. 김학규가 IMC Games에서 만든 그라나도 에스파다와 트리 오브 세이비어에도 SoundTeMP가 참여했다. 심지어 2017년 출시된 '라그나로크 M: 영원한 사랑'에서도 원작의 음원이 그대로 사용되었다. 게임은 변해도, 음악은 그 자리에 남아 세대를 연결하고 있다.
라그나로크 IP의 확장: 그라비티가 걸어온 길
김학규가 떠난 이후에도 그라비티는 라그나로크 IP를 적극적으로 확장해왔다. 그 여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2012년 출시된 '라그나로크 온라인 2'는 그라비티의 야심작이었다. 3D 그래픽으로 완전히 새롭게 만든 후속작이었지만, 정작 유저들은 원작의 감성을 그리워했다. 결국 2020년 글로벌 서비스가 종료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RO2의 실패는 '원작의 매력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그라비티에게 던졌다.
답은 '원작 감성의 모바일화'였다. 2017년 '라그나로크 M: 영원한 사랑'이 동남아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이후 2020년 '라그나로크 오리진', 2021년 '라그나로크 X', 2025년 '더 라그나로크'로 지역별 최적화 전략을 펼쳤다.
2026년 현재, 그라비티는 '라그나로크 허브' 구축의 원년을 선언했다. 유럽·중동·아프리카에 라그나로크X를 출시하고, 대만에서는 'RO선경전설'이 앱스토어 1위를 기록했다. 현재 7종 이상의 라그나로크 IP 게임을 동시 서비스 중이다.
마치며
24년 전 프론테라 광장에서 파티를 구하던 소년들은 이제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그 사이 라그나로크는 7개의 게임으로 분화되었지만, 여전히 2026년 현재까지도 글로벌 앱스토어 최상단을 점령하며 그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여전히 누군가의 플레이리스트에서 흐르는 'Theme of Prontera'는 우리에게 말해준다. 잘 만든 게임 하나는 단순한 소프트웨어를 넘어, 한 세대의 기록이자 영원히 멈추지 않는 유산(Legacy)이 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