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어 시리즈, 실패작에서 900만 판매 명작으로
2010년 상업적으로 실패한 컬트 게임에서 시작해, 2017년 NieR: Automata로 900만 장 이상 판매되며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 된 니어 시리즈의 극적인 부활 이야기.
게임 역사에서 이렇게 극적인 부활을 경험한 시리즈는 드물다. 2010년 출시된 NieR는 독특한 세계관과 감성적인 음악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 실패했다. 하지만 7년 후, 속편 NieR: Automata는 비평과 상업 양면에서 대성공을 거두며 900만 장 이상 판매되는 기염을 토했다. 이것은 기이한 천재 요코 타로와 그의 팀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이야기다.
드라켄가드의 농담 같은 엔딩에서 태어나다
니어 시리즈의 기원은 요코 타로의 전작 드라켄가드(Drakengard, 2003)로 거슬러 올라간다. 드라켄가드는 드래곤과 계약한 주인공이 제국과 싸우는 다크 판타지 액션 게임이었다. 다섯 개의 엔딩 중 'Ending E'에서 주인공과 드래곤이 현대 도쿄 신주쿠에 나타나 최종 보스와 싸우다 격추당한다. 당시 플레이어들은 이 엔딩을 개발팀의 장난 정도로 여겼다.
드래곤의 시체에서 퍼진 마법적 병원체가 '백염병'이라는 치명적인 전염병을 일으킨다. 인류는 멸종 위기에 몰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는 '게슈탈트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영혼(게슈탈트)은 안전한 곳에 보관하고, 육체(레플리칸트)는 백염병이 사라질 때까지 대기한다는 계획이었다.
니어는 이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간 수천 년 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농담 엔딩'처럼 보였던 설정이 거대한 세계관의 시작점이 된 것이다. 요코 타로 특유의 예측 불가능한 스토리텔링이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요코 타로, 마스크를 쓴 이단아
1970년 나고야에서 태어난 요코 타로는 게임 업계에서 가장 독특한 크리에이터 중 하나다. 고베예술공과대학에서 3DCG를 전공한 후 1994년 남코에 입사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카비아로 이직했다. 그는 자신의 외모가 작품에 영향을 주는 것을 싫어해, 공식 석상에서는 항상 에밀(니어의 캐릭터)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그의 창작 방식도 독특하다. '역방향 각본 집필법'이라 불리는 방식으로, 결말을 먼저 정한 뒤 거꾸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플레이어가 느껴야 할 감정을 먼저 설계하고, 그 감정을 이끌어내기 위한 서사를 역으로 구축한다. 이 방식 덕분에 그의 게임들은 엔딩의 감정적 임팩트가 유독 강하다.
요코 타로의 작품은 인간의 어두운 면을 탐구한다. 특히 '왜 사람들은 서로를 죽이는가'라는 질문이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9/11 테러와 이어진 테러와의 전쟁에서 영감을 받아, NieR의 '양측 모두 자신이 옳다고 믿는 비극'이라는 테마가 탄생했다.
NieR (2010), 실패한 걸작
2010년 발매된 NieR는 두 가지 버전으로 출시됐다. 일본에서는 젊은 남동생이 여동생 요나를 구하는 'NieR Replicant'(PS3)와 중년 아버지가 딸을 구하는 'NieR Gestalt'(Xbox 360)가 별도로 나왔다. 서양에서는 Gestalt 버전만 출시됐는데, 서양 시장에서는 중년 남성 주인공이 더 어필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게임플레이는 파격 그 자체였다. 기본적으로 3D 액션 RPG지만, 갑자기 2D 탑다운 슈팅으로 바뀌거나, 텍스트 어드벤처로 전환되기도 했다. 말하는 책 '그리모어 바이스', 욕설을 퍼붓는 여전사 카이네 등 기억에 남는 캐릭터들이 있었다. 케이이치 오카베(MONACA)가 작곡한 OST는 게임 음악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투박한 그래픽과 반복적인 퀘스트 구조로 인해 평점은 낮았고, 판매량은 저조했다. 결국 개발사 카비아는 AQ 인터랙티브에 흡수된 뒤 사실상 해체됐다. 니어는 잊혀가는 컬트 게임이 될 운명처럼 보였다.
플래티넘 게임즈와의 만남
NieR 이후 요코 타로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카비아가 해체되면서 정규직 자리를 잃었고, 프리랜서 디렉터로 모바일 게임이나 소규모 프로젝트를 전전했다. 드라켄가드 3의 디렉터를 맡았지만, 저예산으로 제작되어 프레임 드롭이 심각한 게임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2015년, 예상치 못한 전환점이 찾아왔다. 스퀘어 에닉스의 프로듀서 사이토 요스케가 니어 속편 제작을 제안한 것이다. 이번에는 베요네타, 메탈기어 라이징으로 유명한 액션 전문 스튜디오 플래티넘 게임즈가 개발을 맡기로 했다. 원작의 가장 큰 약점이었던 전투 시스템이 업계 최고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될 것이었다.
플래티넘의 탄탄한 액션 시스템과 요코 타로의 독특한 세계관이 결합됐다. 기계 생명체에게 지구를 빼앗긴 인류가 달로 도망치고, 안드로이드 부대 '요르하'를 만들어 지구 탈환 작전을 펼친다는 설정이 완성됐다.
NieR: Automata, 기적의 부활
2017년 2월 일본, 3월 전 세계 출시된 NieR: Automata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첫 주 일본에서만 20만 장이 팔렸고, 스팀에서도 동시 접속자 수가 치솟았다. 플래티넘 게임즈의 쾌적한 액션, 요코 타로의 독특한 스토리, MONACA의 아름다운 음악이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게임은 여러 번의 플레이스루를 통해 이야기가 깊어지는 구조를 갖고 있다. 첫 번째 플레이(루트 A)는 2B의 시점, 두 번째(루트 B)는 9S의 시점, 세 번째(루트 C/D)는 완전히 새로운 전개로 진행된다. 26개의 엔딩(A~Z) 중 진엔딩인 E는 플레이어들이 서로 돕는 메타적 연출로 많은 이들에게 눈물을 흘리게 했다.
게임은 The Game Awards에서 최우수 내러티브상, 최우수 음악상을 수상했다. 2024년 기준 전 세계 900만 장 이상 판매되며, 상업적 실패작의 속편이 천만 장에 육박하는 대작이 된 것은 게임 역사상 유례가 드문 일이었다.
2B, 아이콘이 된 안드로이드
니어 오토마타의 성공에는 캐릭터의 힘이 컸다. 특히 주인공 2B(요르하 2호 B형)는 발매 전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고딕풍 블랙 드레스에 하이힐 부츠, 눈을 가린 검은 바이저 - 파이널 판타지 택틱스, FF12의 아트 디렉터 요시다 아키히코가 디자인한 그녀의 비주얼은 단숨에 게임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캐릭터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2B의 매력은 외모에만 있지 않았다. 감정을 억제하도록 프로그래밍된 안드로이드가 동료 9S와의 관계 속에서 보여주는 미묘한 감정선이 플레이어들을 사로잡았다. 9S를 대하는 태도, 기계 생명체를 마주했을 때의 망설임, 사소한 대사 속 뉘앙스들이 쌓여 입체적인 캐릭터를 완성했다.
여러 플레이스루를 거치며 밝혀지는 그녀의 진짜 정체와 비극적 운명은 충격적이었다. 2B의 'B'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밝혀지는 순간, 플레이어들은 처음부터 게임을 다시 보게 된다. 2B는 단순한 '예쁜 캐릭터'를 넘어 깊이 있는 서사의 중심이 됐다.
음악의 힘, MONACA와 케이이치 오카베
니어 시리즈를 논할 때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작곡가 케이이치 오카베와 그의 스튜디오 MONACA가 만든 OST는 게임 음악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오카베는 원래 남코의 테일즈 시리즈, 철권 시리즈 음악을 담당했던 작곡가였다.
니어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카오스 언어'라 불리는 가상의 언어로 된 보컬이다. 일본어, 영어, 프랑스어 등 다양한 언어를 섞어 만든 이 가상 언어는 어떤 특정 문화권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보편적인 감정을 전달한다. 가사의 의미를 몰라도 멜로디와 보컬의 감정이 직접적으로 전해진다.
'Weight of the World', 'Kainé - Salvation', 'City Ruins' 같은 곡들은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사랑받는다. 유튜브에서 니어 OST 영상들은 수천만 회 조회수를 기록했고, 세계 각지에서 니어 오케스트라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레플리칸트 리마스터와 확장되는 세계관
2021년, 'NieR Replicant ver.1.22474487139...'라는 기묘한 제목의 리마스터가 출시됐다. 제목의 숫자는 루트 2의 근삿값으로, '1에 가깝지만 1이 아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양 플레이어들이 처음으로 남동생 버전의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게 됐고, 그래픽과 전투 시스템이 현대화됐다.
새로운 엔딩 E도 추가됐다. 원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엔딩 D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며, 오토마타와의 연결고리를 강화했다. 리마스터는 상업적으로도 성공해 200만 장 이상 판매됐다.
니어의 세계는 게임을 넘어 확장되고 있다. 2023년에는 NieR: Automata Ver1.1a 애니메이션이 방영됐고, 파이널 판타지 XIV에는 요코 타로가 직접 시나리오를 쓴 '요르하: 다크 아포칼립스' 레이드가 추가됐다.
마치며: 실패해도 끝이 아니다
니어 시리즈의 역사는 '실패해도 끝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준다. 2010년 상업적으로 실패한 게임이 7년 뒤 900만 장짜리 히트작의 원작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작품의 고유한 가치를 믿고 이어간 요코 타로, 그를 다시 불러준 스퀘어 에닉스, 액션의 품질을 보장한 플래티넘 게임즈의 만남이 명작을 탄생시켰다.
요코 타로는 여전히 마스크 뒤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니어의 다음 장이 어떤 모습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예측 불가능함 속에서 깊은 감동을 선사하는 그의 다음 작품을 팬들은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