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토니시아 스토리, 손노리의 30년과 리메이크

히스토리

1994년 손노리가 개발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는 한국 RPG의 역사를 연 전설적인 작품이다. 10만 장 판매, 한국게임대상 수상으로 국산 게임의 가능성을 증명했으며, 30년 만에 리메이크로 돌아왔다.

2025년 12월 18일,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리파인이 닌텐도 스위치와 PC로 출시되었다. 1994년 원작 출시 후 정확히 30년 만의 리메이크다. 출시 후 평가는 엇갈렸다. 버그와 불편한 조작감, 낡은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지만, 탄탄한 서사와 전투 연출만큼은 여전히 빛난다는 평가도 있었다.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는 단순한 옛날 게임이 아니다. 한국 RPG의 가능성을 증명한 이정표이자, 악튜러스와 화이트데이를 만든 손노리의 출발점이다. 30년의 세월 동안 손노리가 겪은 영광과 고난, 그리고 귀환의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손노리의 탄생과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DOS 타이틀 화면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1994) 타이틀 화면

1992년, 이원술을 비롯한 7명의 청년이 손노리를 설립했다. 회사명은 '손끝에서 노래가 흐른다'는 의미로, 게임 개발에 대한 낭만적인 포부를 담았다. 당시 한국 게임 시장은 일본 게임이 지배하고 있었고, 국산 RPG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다. 파이널 판타지, 드래곤 퀘스트 같은 일본 RPG가 시장을 장악한 상황에서 한국 개발사가 RPG를 만든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으로 여겨졌다.

2년간의 개발 끝에 1994년, 어스토니시아 스토리가 세상에 나왔다. 소프트라이에서 배급한 이 게임은 MS-DOS 기반의 턴제 RPG였다. 정통 일본식 RPG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한국적인 감성과 스토리텔링을 담아냈다. 특히 지형과 높낮이를 활용한 전술적 전투 시스템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다. 파티원들의 위치와 지형 효과가 전투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시스템이었다.

캐릭터 디자인은 훗날 열혈강호로 유명해지는 양재현 작가가 맡았다. 개성 있는 캐릭터들과 몰입감 있는 스토리는 플레이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주인공 로이드가 동료들과 함께 세계를 구하는 여정은 클리셰였지만, 한국어로 펼쳐지는 서사라는 점만으로도 당시 게이머들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10만 장 판매, 국산 게임의 가능성을 증명하다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DOS 마을 탐험 게임플레이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마을 탐험 장면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는 국내에서 10만 장 이상 판매되며 대성공을 거뒀다. 1995년 한국게임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국산 게임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성공은 단순한 상업적 성과를 넘어, 한국 게임 산업 전체에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당시 불법 복제가 만연했던 시장에서 10만 장 판매는 놀라운 성과였다. 실제로 손노리는 훗날 인터뷰에서 '불법 복제가 없었다면 100만 장도 가능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1990년대 한국에서는 게임을 구매한다는 개념 자체가 희박했다. 대부분의 게이머들이 복사본으로 게임을 즐기던 시절, 정품 10만 장이라는 숫자는 그만큼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의미했다.

이 성공을 발판으로 손노리는 본격적인 게임 개발사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후속작과 신작 개발에 투자할 수 있는 자금이 생겼고, 더 많은 인재들이 합류했다.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의 성공은 손노리뿐 아니라 한국 게임 산업 전체에 RPG 개발 붐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황금기: 악튜러스와 화이트데이

화이트데이 학교 내부 공포 게임 스크린샷
화이트데이: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 (2001)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이후 손노리는 다크사이드 스토리, 포가튼 사가, 강철제국 등을 연달아 출시했다. 모든 작품이 성공한 것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작품을 내놓으며 개발력을 쌓아갔다. 그리고 2001년, 손노리의 대표작이 될 두 게임이 등장한다. 악튜러스와 화이트데이다.

악튜러스는 손노리와 그라비티(김학규 대표)가 공동 개발한 작품이다. 프로젝트 규모가 너무 커서 한 회사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광활한 세계관과 깊이 있는 스토리로 한국 RPG의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100시간이 넘는 플레이타임, 수십 명의 개성 있는 캐릭터, 복잡하게 얽힌 서사는 지금 봐도 놀라운 수준이다. 김학규 대표는 이후 라그나로크 온라인으로 또 한 번 역사를 쓰게 된다.

같은 해 출시된 화이트데이: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은 KAIST 출신 이은석 디렉터가 총괄한 작품이다. 한국형 공포 게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학교라는 친숙한 공간을 배경으로 동양적인 공포를 담아낸 이 게임은 큰 인기를 얻었다. 전투 시스템 없이 오직 숨고 도망치는 것만으로 공포를 극대화한 디자인은 당시로서는 혁신이었다. 이은석은 이후 넥슨으로 이직해 마비노기 영웅전, 듀랑고 등을 만들며 한국 게임계의 스타 디렉터가 됐다.

시련의 시대

악튜러스 RPG 도시 탐험 게임플레이 스크린샷
악튜러스 (2001) - 손노리의 대표작

2000년대 중반, 한국 게임 시장은 급변했다. 온라인 게임이 주류가 되면서 패키지 게임 시장은 급격히 위축되었다. 리니지, 뮤, 메이플스토리 같은 온라인 게임들이 PC방을 점령했고, 패키지 게임을 구매해서 플레이하는 문화는 사라져갔다. 손노리도 이 파도를 피할 수 없었다.

엔트리브와 협력해 개발한 팡야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수익 배분 문제로 분쟁이 발생했다. 팡야는 글로벌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었지만, 정작 개발사인 손노리에게 돌아오는 수익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 갈등은 회사의 재정 상황을 악화시켰고, 결국 2012년 손노리는 CJ(현 넷마블)에 인수되어 턴온게임즈로 사명이 바뀌었다.

2014년 이원술 대표를 비롯한 핵심 인력이 퇴사해 로이게임즈를 설립했다. 남은 턴온게임즈는 2015년 넷마블네오가 되어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화이트데이 등 IP를 보유하게 됐다. 로이게임즈는 이후 손노리로 사명을 변경했지만, 현재는 이원술 대표 포함 직원 3명으로 사실상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창업자가 자신이 만든 IP에 대한 권리를 잃은 채, 같은 이름의 회사를 운영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됐다.

30년 만의 귀환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리파인 전투 연출 스크린샷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리파인 (2025) 전투 화면

2024년 5월 20일, 대원미디어 게임랩이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30주년 리메이크를 발표했다. IP는 넷마블네오가 보유하고 있어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고, 개발은 웨이코더가 맡았다. 이원술 대표는 IP 소유권 없이 검수 역할로만 참여했다. 자신이 만든 게임의 리메이크에 손님처럼 참여하게 된 것이다.

2025년 12월 18일,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리파인'이 닌텐도 스위치와 PC로 정식 출시되었다. 그래픽은 2D 도트에서 3D로 바뀌었고, 전투 시스템도 현대적으로 개선되었다. 하지만 스위치 버전은 닌텐도 e숍에서 구매할 수 있는 반면, PC 버전은 스팀이 아닌 NC퍼플 플랫폼 독점으로 출시되어 접근성 논란이 일었다. 글로벌 유통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는 선택이었다.

게임 자체도 버그, 불편한 UI, 과도한 메타 유머 등으로 비판을 받았다. 특히 원작의 진지한 분위기를 해치는 자기 패러디 요소들이 논란이 됐다. 다만 원작의 서사와 지형을 활용한 전술 전투는 여전히 매력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출시 초기의 혹평 이후 '생각보다 괜찮다'는 재평가 의견도 조금씩 나오고 있다.

마치며: 그 시절의 설렘

국산 RPG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한국 게임 산업에 수많은 인재를 남긴 손노리. 악튜러스의 김학규는 라그나로크를, 화이트데이의 이은석은 마비노기 영웅전을 만들었다. 회사는 인수합병 끝에 흩어졌지만, 그 족적은 지금도 업계 곳곳에 남아 있다.

30년 만에 돌아온 리메이크는 호불호가 갈렸다. 하지만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라는 이름은 여전히 특별하다. 한국에서 만든 RPG로 밤을 새우던 그때의 설렘을, 잠시나마 떠올리게 해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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