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니지 클래식 월정액 29,700원 복귀 - 엔씨소프트의 마지막 승부수
1998년 한국 온라인 게임의 역사를 연 리니지가 월정액 29,700원으로 돌아온다. 과금 논란의 대명사였던 엔씨소프트가 구조조정 끝에 던지는 승부수.
리니지 클래식 월정액 29,700원 - 28년 전 가격 그대로
2026년의 막이 오르던 1월 1일 자정, 예고 없이 공개된 티징 영상 하나가 게임 시장을 강타했다.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클래식'. 1998년 대한민국 인터넷 카페(PC방)의 풍경을 바꿔놓았던 바로 그 리니지가 2000년대 초반의 모습으로 귀환한다는 소식이었다.
충격은 콘텐츠보다 가격에서 왔다. 월 29,700원.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현재 가치로 7만 원이 훌쩍 넘을 금액을 28년 전 그대로 동결했다. '과금 유도의 명가'라는 오명을 썼던 엔씨가 던진, 실로 파격적인 카드였다.
1998년 리니지 탄생 - 한국 MMORPG의 원점
1998년 9월, 신일숙 작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리니지'의 등장은 혁명이었다.
'온라인 게임'이라는 개념조차 희미하던 시절, 리니지는 출시 15개월 만에 국내 최초로 회원 수 100만 명을 돌파했다.
새벽 PC방 앞에 길게 늘어선 줄, '혈맹'의 깃발 아래 밤새워 성을 공략하던 전우애.
당시 리니지는 단순한 게임을 넘어 하나의 사회이자 문화 현상이었다. 2016년 단일 게임 최초 누적 매출 3조 원 돌파라는 기록은 한국 게임 산업의 역사 그 자체였다.
리니지M 과금 논란 - 무너진 신화와 신뢰
비극의 씨앗은 역설적이게도 최고의 전성기에 잉태됐다.
2017년 '리니지M'이 모바일 MMORPG 시장을 평정하며 막대한 부를 안겨주었지만, 이때부터 엔씨는 길을 잃기 시작했다.
'게임'이 아닌 '과금 모델(BM)'을 개발하는 데 치중했다. 개발 주도권이 사업부로 넘어가면서 확률형 아이템과 강화 시스템은 날이 갈수록 가혹해졌다.
수천만 원을 써도 원하는 아이템을 얻을 수 없었고, 월 5만 5천 원짜리 버프 없이는 정상적인 플레이가 불가능한 설계까지 등장했다.
내부 개발자들조차 "우리는 BM만 만들고 있다"며 자조 섞인 비판을 쏟아냈다. '리니지W' 출시 당시 벌어진 불매 운동과 김택진 대표의 사과, 그리고 "엔씨 게임은 하는 게 아니라 당하는 것"이라는 조롱 섞인 명언은 바닥에 떨어진 신뢰를 방증했다.
TL 쓰론앤리버티 실패 - 안방에서 외면받다
2023년 12월, 7년간의 개발 끝에 야심 차게 선보인 '쓰론 앤 리버티(TL)'는 냉혹한 현실을 마주했다.
"또 리니지겠지"라는 유저들의 선입견은 거대한 벽이었다. 국내 동시 접속자는 곤두박질쳤고, '탈(脫) 리니지'를 외쳤음에도 '리니지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혹평이 잇따랐다.
결국 엔씨는 아마존게임즈와 손잡고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2024년 10월, 스팀 동시 접속 30만 명을 기록하며 글로벌 역주행에는 성공했지만, 안방인 한국 시장에서의 참패는 뼈아픈 굴욕으로 남았다. 2024년 기록한 창사 이래 첫 연간 영업적자(1,092억 원)는 그 대가였다.
엔씨소프트 구조조정 - 700명 희망퇴직의 내홍
변화는 자발적이지 않았다. 벼랑 끝에 몰려서야 칼을 빼 들었고, 그 칼끝은 내부를 향했다.
외부 출신인 박병무 공동대표의 취임은 위기의 반증이었다. 희망퇴직이라는 이름 아래 700명이 회사를 떠났고, 5,000명이 넘던 임직원은 3,000명대로 축소됐다.
이어 단행된 자회사 분사는 갈등의 정점이었다.
4개의 독립 스튜디오 설립을 두고 경영진은 "경쟁력 강화"를, 노조는 "고용 불안"을 외쳤다. 결국 분사는 강행됐지만, '개발자들의 천국'이라 불리던 엔씨의 자부심에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남았다.
아이온2 성공 - 체질 개선의 첫 성과
2025년 11월, 체질 개선의 첫 성과가 나타났다. 'MMORPG 아이온2'의 성공이었다.
악명 높던 과금 요소를 과감히 덜어내고, 월 2~3만 원대 멤버십과 배틀패스 중심의 합리적인 BM을 채택했다. 운영진의 적극적인 소통도 빛을 발했다.
출시 46일 만에 누적 매출 1,000억 원 돌파. 증권가는 2026년 연간 매출 5,000억 원을 전망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엔씨가 변할 수도 있구나"라는 유저들의 인식 변화였다.
엔씨소프트 서브컬처 진출 - 급한 만큼 위험한 도박
아이온2로 한숨 돌린 엔씨는 곧바로 서브컬처 시장 공략에 나섰다.
2026년 1월, '디나미스 원'과 '덱사스튜디오'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단행하며 신규 IP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업계의 시선은 복합적이다.
특히 '디나미스 원'은 넥슨게임즈 '블루 아카이브' 인력의 이탈과 전작 '프로젝트 KV'의 표절 논란, 그리고 경찰 수사까지 얽혀있는 곳이다. "이미지 회복이 시급한 시점에 너무 큰 리스크를 짊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그만큼 새로운 파이프라인이 절실하다는 방증"이라는 해석이 교차한다.
리니지 클래식 100% 수동 - 불편함의 미학
이 모든 변화의 정점에 '리니지 클래식'이 있다.
2026년 2월 7일 사전 서비스를 시작으로, 11일부터 정식 월정액(29,700원) 체제에 돌입한다. 핵심은 '불편함의 미학'이다.
자동 사냥은 없다. 100% 수동 조작, 거래소가 아닌 유저 간 1:1 직거래, 사망 시 경험치 하락 페널티까지.
2000년대 초반의 살 떨리는 긴장감을 그대로 복원했다. 엔씨는 "프로모션 BJ 운영은 절대 없다"고 못 박으며, 유저들이 가장 혐오했던 요소들을 스스로 거세했다.
리니지 클래식 사전예약 7분 마감 - 살아있는 불씨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1월 14일 시작된 사전 캐릭터 생성은 최초 10개 서버가 단 7분 만에 마감되는 기염을 토했다. 급히 추가한 서버들마저 연이어 마감되며 총 20개 서버로 증설됐다.
'데포로쥬', '켄라우헬' 등 추억의 서버명과 사전 예약 보상인 '해골 투구·골각 방패(뼈셋)'는 3040 '린저씨'들의 향수를 정확히 자극했다.
리니지라는 IP가 가진 잠재력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증명한 순간이었다.
마치며
엔씨소프트는 분명 반등의 기회를 잡았다. '아이온2'로 변화의 가능성을 보였고, '리니지 클래식'으로 폭발적인 관심을 증명했다.
하지만 게이머들은 기억한다. 리니지M도, 리니지W도, 심지어 TL조차도 시작은 화려했다는 것을.
초반 흥행보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변심하지 않고 약속을 지키는 '운영의 지구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월 29,700원, 100% 수동 플레이, NO 프로모션. 판은 깔렸고, 공은 다시 엔씨소프트에게 넘어갔다.
이번에야말로 '돌아온 탕자'가 될 수 있을지, 아니면 '역시나'로 끝날지. 한국 게임 업계의 눈이 2월의 리니지를 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