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픽 vs 트럼프 행정부, 자율 무기와 감시 거부가 부른 전면전
엔트로픽이 대규모 국내 감시와 완전 자율 무기 활용을 거부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전 연방기관 엔트로픽 사용 금지를 발동했다. 2억 달러 펜타곤 계약부터 마두로 작전까지, 7개월간의 갈등이 파국으로 치달은 전말을 추적한다.
2026년 2월 27일, 트럼프 대통령이 전 연방기관에 엔트로픽 제품 사용 금지를 선언했다.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는 엔트로픽을 '공급망 리스크'로 지정했다. 불과 7개월 전 2억 달러 규모 펜타곤 계약을 체결했던 AI 기업이 하루아침에 정부의 적이 된 것이다.
갈등의 핵심은 단 두 가지였다. 대규모 국내 감시와 완전 자율 무기. 엔트로픽은 이 두 가지만은 양보할 수 없다고 했고, 트럼프 행정부는 그것을 '이념적 변덕'이라 불렀다.
1. 펜타곤 AI 계약, 시작은 순조로웠다
2025년 7월 14일, 펜타곤과 엔트로픽은 최대 2억 달러 규모의 AI 계약을 체결했다. Palantir를 통해 Claude가 기밀 네트워크에 배치됐다. AI 기업이 미 국방부의 기밀 시스템에 최초로 진입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엔트로픽은 미국 방위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있었다. 기밀 네트워크 최초 배치, CCP(중국공산당) 연계 기업과의 거래 차단으로 수억 달러의 매출을 포기하기까지 했다. 방산 업계에서 엔트로픽의 입지는 빠르게 확대되고 있었다.
하지만 9일 뒤인 7월 23일, 트럼프는 'Woke AI 방지'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AI 기업들이 안전성이나 윤리를 이유로 정부 요구를 거부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하는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상징적 조치로 여겨졌지만, 이것이 6개월 뒤 엔트로픽을 겨냥한 무기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2. 마두로 작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다
2026년 1월 3일, 베네수엘라 대통령 마두로 체포 작전에 Claude가 실전 투입됐다. 구체적인 활용 방식은 기밀로 분류됐지만, AI가 실제 군사 작전의 핵심 도구로 사용된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12일 뒤, 국방장관 헤그세스는 AI 가속 전략을 발표하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군사적 제한을 거는 AI는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엔트로픽을 직접 겨냥한 경고였다.
2월 13일, 마두로 작전에서의 Claude 사용이 언론에 보도됐다. 엔트로픽은 불쾌감을 표명했다. 자사 AI가 어떤 맥락에서, 어떤 목적으로 투입됐는지 충분한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것이다. 펜타곤은 '재평가'를 시사했다.
4일 뒤인 2월 17일, Palantir 파트너십이 갈등의 핵심 고리로 부상했다. Palantir가 중간 계층으로 존재함으로써, 엔트로픽이 자사 AI의 최종 사용 목적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3. 최후통첩: '루비콘을 건너라'
2월 19일, 엔트로픽 이사회 멤버이자 전 우버 부사장 에밀 마이클이 공개적으로 압박에 나섰다. '루비콘을 건너라'는 메시지였다. 엔트로픽이 윤리적 레드라인을 포기하고 정부 요구에 전면 협력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2월 24일, 헤그세스와 엔트로픽 CEO 다리오 아모데이의 면담이 이뤄졌다. 헤그세스는 2월 27일까지 답을 달라는 최후통첩을 전했다. 요구 사항은 명확했다. 대규모 국내 감시 프로그램에 Claude를 제공하고, 완전 자율 무기 시스템에 대한 제한을 해제하라.
2월 26일, 아모데이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는 양심적으로 그들의 요구에 응할 수 없습니다(We cannot in good conscience accede to their request)." 그는 엔트로픽이 거부하는 것은 오직 두 가지뿐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시민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감시와, 인간의 통제 없이 작동하는 완전 자율 살상 무기.
아모데이의 성명은 AI 업계 전체에 파문을 일으켰다. 샘 알트만은 OpenAI도 동일한 레드라인을 공유한다고 밝혔다.
4. 전면 금지: 트럼프의 보복
2월 27일, 최후통첩 기한이 지나자 트럼프는 즉각 행동에 나섰다. 전 연방기관에 엔트로픽 제품 사용 금지를 발동하고, 엔트로픽을 '좌파 미치광이들(Leftwing nut jobs)'이라 칭했다.
헤그세스는 더 강경했다. 엔트로픽을 '공급망 리스크'로 공식 지정하며 선언했다. '미국 전투원은 빅테크의 이념적 변덕에 인질이 되지 않을 것이다.' 국방생산법 발동까지 거론되며 엔트로픽에 대한 강제적 협력을 시사했다.
에밀 마이클은 한층 더 나아갔다. 아모데이를 '거짓말쟁이'이자 '신 콤플렉스(God complex)'를 가진 인물이라 공격했다. 이사회 멤버가 자사 CEO를 이런 식으로 공격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었다.
엔트로픽 측은 '공급망 리스크' 지정과 '국방생산법' 발동 위협이 서로 모순된다고 반박했다. 진정으로 공급망 리스크라면 국방생산법으로 강제 협력을 시킬 이유가 없고, 강제 협력이 필요하다면 공급망 리스크가 아니라는 논리였다.
5. AI 산업 전체에 드리운 그림자
이번 사태는 단순한 한 기업과 정부의 갈등이 아니다. AI 산업 전체의 방향성을 묻는 사건이다.
엔트로픽은 현재 기업가치 약 3,800억 달러, 연매출 140억 달러 규모의 기업이다. 2026년 IPO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연방 사용 금지는 기업가치에 직접적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정부 계약은 AI 기업의 매출에서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남아 있다. AI 기업은 정부의 모든 요구에 응해야 하는가? 완전 자율 무기와 대규모 감시에 대한 윤리적 한계선은 누가 정하는가? 샘 알트만이 동일한 레드라인을 공유한다고 밝힌 것은, 이것이 엔트로픽만의 문제가 아님을 시사한다.
'Woke AI 방지' 행정명령은 AI 기업의 윤리적 판단을 '이념적 변덕'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자국민 감시와 자율 살상 무기에 대한 거부가 정말 '이념적 변덕'인지, 아니면 기술 기업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인지는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다.
마치며: 양심의 가격표
엔트로픽은 2억 달러 펜타곤 계약을 잃었다. 연방 시장 전체에서 퇴출됐다. IPO 일정에도 먹구름이 드리웠다. 양심에는 분명한 가격표가 있었다.
하지만 아모데이의 말처럼, 엔트로픽이 거부한 것은 미국 방위가 아니었다. 그들은 기밀 네트워크에 AI를 배치했고, 중국 기업과의 거래를 거부하며 수억 달러를 포기했다. 오직 두 가지, 자국민에 대한 대규모 감시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자율 무기만을 거부했을 뿐이다.
이 갈등은 AI 시대의 근본적 딜레마를 보여준다. 기술 기업은 정부의 요구에 어디까지 응해야 하는가. 그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엔트로픽은 적어도 자신의 답을 내놓았다. 그 대가가 무엇이든.
- Anthropic - Statement from Dario Amodei on our discussions with the Department of War
- TechCrunch - Anthropic CEO stands firm as Pentagon deadline looms
- Los Angeles Times - Anthropic refuses to bend to Pentagon on AI safeguards as dispute nears deadline
- POLITICO - Anthropic rejects Pentagon's AI demands
- Wall Street Journal - Anthropic CEO Amodei on Pentagon's Proposal to Loosen AI Restri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