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본법 시행 1주, 게임 업계 '표시 의무' 혼란 지속…유연한 적용 요구
세계 최초로 AI 기본법이 전면 시행됐지만, 게임 업계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생성형 AI로 만든 콘텐츠에 표시 의무가 생겼으나 구체적 방법이 불명확하고, 인게임 표기가 몰입을 해친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게임의 특수성을 고려한 유연한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
2026년 1월 22일,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 기본법)이 세계 최초로 전면 시행됐다. 한국이 EU보다 먼저 AI 규제를 본격화한 것이다. 그러나 시행 1주일이 지난 지금, 게임 업계에서는 '어떻게 표시해야 하는지' 구체적 기준이 없어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제36조 '생성형 인공지능의 표시 의무'다. AI로 만든 텍스트, 이미지, 영상, 음성에는 이용자가 이를 인지할 수 있도록 표시해야 한다. 게임에서 NPC 대사를 실시간 생성하거나, 캐릭터 일러스트에 AI를 활용하면 모두 해당된다.
1. 무엇을, 어디에, 어떻게 표시해야 하나
법은 시행됐지만 세부 가이드라인은 아직이다. 과기정통부는 '가시적·비가시적 방식의 워터마크'를 언급했을 뿐, 게임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기해야 하는지 방법을 정하지 않았다.
업계의 의문은 명확하다. NPC가 AI로 생성한 대사를 말할 때마다 화면에 'AI 생성물'이라고 띄워야 하는가? 캐릭터 일러스트 한 장마다 워터마크를 넣어야 하는가? AI가 일부 보정한 이미지도 표시 대상인가? 이 모든 질문에 답이 없다.
27일 서울대에서 열린 2026 게임산업 전망 신년 토론회에서 가천대 전성민 교수는 "게임사와 웹툰 업계가 생성형 AI 사용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 어려운 분위기"라며 "AI 활용이 인력 감축이나 '쉽게 만든 콘텐츠'라는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부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 '몰입감 저해' vs '이용자 알 권리'
게임 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몰입감 저해다. 판타지 세계관 속 NPC와 대화하는데 갑자기 '생성형 AI로 만들어진 대화입니다'라는 문구가 뜬다면? 유저 입장에서 흥이 깨질 수밖에 없다.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반응은 엇갈린다. "게임 켤 때 사행성 경고처럼 한 번만 띄우면 되지, 왜 일일이 표기하라는 건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AI 창작물에 AI 표기 필수는 필요하다. 세상이 어지럽다"는 반응도 있다.
법의 취지는 딥페이크 오용 방지와 이용자의 알 권리 보장이다. 하지만 게임처럼 '허구의 콘텐츠'가 본질인 매체에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논쟁거리다. 영화 CG에 'AI 생성물' 표시를 요구하지 않듯이, 게임도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3. 해외 플랫폼도 예외 없다
이 법은 국내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4조(국외행위에 대한 적용)는 해외에서 이루어진 행위라도 국내 이용자에게 영향을 미치면 법을 적용한다고 명시했다. 스팀, 에픽게임즈 같은 글로벌 플랫폼도 한국 서비스를 계속하려면 국내법을 준수해야 한다.
더 나아가 제39조는 일정 규모 이상의 해외 사업자에게 국내 대리인 지정을 의무화했다. 법을 위반하면 국내 대리인을 통해 제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글로벌 게임사들 입장에서는 한국 시장만을 위한 별도 대응이 필요해진 셈이다.
다만 이런 역외 적용이 실제로 어떻게 집행될지는 미지수다. 국내 기업만 규제를 받고 해외 기업은 사실상 방치되는 '역차별' 우려도 제기된다.
4. 중소 개발사의 '법률 준수 비용' 부담
대기업은 법무팀과 준법 체계를 갖추고 대응할 수 있다. 문제는 인디와 중소 스튜디오다. 전성민 교수는 "대기업은 내부 준법 체계를 구축할 수 있지만, 인디·중소 스튜디오는 같은 수준의 준비가 어려워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AI를 활용하면 저작권 침해 분쟁 가능성이 커지고, 데이터 프라이버시 이슈도 동반된다. 순수 AI 생성물의 저작권 인정 여부가 불명확한 '사각지대'도 문제다. 게임은 방대한 구성요소가 축적되는 산업 특성상, 출시 이후 특정 에셋의 생성 경로와 권리관계를 되짚기 어렵다.
이런 법적 리스크를 관리하려면 비용이 든다. 결국 자본력 있는 대형사와 그렇지 못한 중소 개발사 사이의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
5. 업계의 요구: '규제 샌드박스' 확대
업계에서는 '선허용·사후규제' 원칙을 게임 분야에 유연하게 적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AI 기본법 제6조는 다른 법령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누구든지 AI 기술을 제한 없이 연구·개발하고 출시할 수 있다는 원칙을 명문화했다. 이 조항을 게임에도 폭넓게 적용해달라는 것이다.
전성민 교수는 "규제 샌드박스 확장이 필요하다"며 "AI가 콘텐츠를 상시 수정·생성하는 환경에서 현행 등급심사 체계가 그대로 작동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부가 인디 스튜디오의 기술 도입을 돕는 지원 프로그램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과기정통부는 초기에는 처벌보다 지도 위주로 법을 집행하며, 1년 이상 계도 기간을 두겠다고 밝혔다. 세부 가이드라인이 게임의 특수성을 얼마나 반영하느냐가 제도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마치며: 기술 도약과 사회적 책임 사이에서
AI 기본법 시행으로 게임 업계는 기술적 도약의 발판과 사회적 책임이라는 과제를 동시에 안게 됐다. AI는 이미 게임 개발 현장에서 코드 이해, 콘셉트 아트 생성, 실시간 콘텐츠 제작 등 생산성을 크게 높이고 있다.
그러나 규제가 산업 발전을 앞서가면 혁신의 싹이 꺾일 수 있다. 전성민 교수의 표현처럼 "AI 도입 패턴이 1990년대 인터넷 도입과 유사하다. 기술 도입 방식과 제도 설계가 이후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
게임 업계는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업종별 특수성을 반영한 유연한 적용을 기다리고 있다. 향후 발표될 세부 지침이 혼란을 해소하고, 한국 게임 산업이 AI 시대에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