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컬쳐 게임 시장의 위기? 승자독식 구조가 만든 생존 게임

서브컬쳐 게임 시장의 위기? 승자독식 구조가 만든 생존 게임 대표 이미지

서브컬쳐 게임 시장이 위기라는 말이 나오지만, 실상은 시장 축소가 아닌 승자독식 구조의 심화다. 미호요의 압도적 퀄리티를 중소 게임사가 따라잡지 못하면서, 진입장벽이 극도로 높아진 현실을 분석한다.

서브컬쳐 게임 시장이 위기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새로 출시되는 게임들이 줄줄이 서비스 종료를 선언하고, 야심차게 준비하던 프로젝트가 개발 중단되는 소식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걸 '시장의 위기'라고 부르기엔 뭔가 맞지 않는다. 서브컬쳐 시장 자체가 축소되고 있는 게 아니라,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구조가 굳어지면서 진입장벽이 극도로 높아진 것이 현실이다.

1. 미호요의 압도적 독주, 2025년 매출 TOP 10

2025년 글로벌 서브컬쳐 매출 1위를 차지한 붕괴: 스타레일
2025년 글로벌 서브컬쳐 매출 1위를 차지한 붕괴: 스타레일

2025년 글로벌 서브컬쳐 모바일 게임 매출 순위를 보면 상황이 명확해진다. 게이밍온폰이 앱매직 데이터를 기반으로 발표한 TOP 10에서, 미호요(호요버스)는 무려 3개의 게임을 순위권에 올렸다.

1위 붕괴: 스타레일(4억 2천만 달러), 3위 원신(3억 2,900만 달러), 10위 젠레스 존 제로(1억 6,650만 달러). 상위권을 미호요가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2위는 여성향 게임 러브앤딥스페이스, 4위는 10년 넘게 롱런 중인 페이트/그랜드 오더가 차지했다.

이 순위에서 한국 게임은 딱 하나, 시프트업의 승리의 여신: 니케가 7위에 이름을 올렸다. 텐센트의 레벨 인피니트가 퍼블리싱을 맡은 글로벌 서버는 출시 이후 여러 국가에서 매출 상위권을 기록하며 K-서브컬쳐의 자존심을 지켰다.

하지만 니케 외에는 글로벌 TOP 10에 진입한 한국 게임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중국 5개, 일본 4개, 한국 1개. 이것이 2025년 서브컬쳐 시장의 현주소다.

2. 한국 게임사들의 도전, 그리고 냉랭한 반응

일본 도쿄 완구점에 전시된 블루 아카이브와 니케
일본 도쿄 완구점에 전시된 블루 아카이브와 니케

블루 아카이브와 니케의 성공에 고무된 한국 게임 업계는 2025년 수많은 후발 주자들을 내보냈다. 오즈 리라이트, 어비스디아, 스타세이비어, 카오스 제로 나이트메어(카제나) 등이 글로벌 동시 출시 또는 일본 선제 출시 형태로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일본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상당수 게임이 일본 애플 앱스토어 매출 50위의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스마일게이트의 카제나가 크리스마스 이벤트 시점에 잠시 매출 6위를 찍고, 중소 게임사 에피드게임즈의 트릭컬 리바이브가 20위권에 오른 것이 그나마 체면치레였다.

시장의 냉담한 반응에 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넷마블은 서브컬쳐 RPG 차기작 데미스 리본의 개발을 중단했고, 웹젠은 테르비스 개발사 웹젠노바의 경영진을 교체한 뒤 '게임 구조 전반의 근본적 변경'을 선언했다.

엔씨소프트의 호연도 출시 약 1년 6개월 만에 2026년 2월 서비스 종료를 발표했다. 서브컬쳐 게임이 잘 된다고 해서 뛰어들었다가 쓴맛을 본 사례가 쌓이고 있는 것이다.

3. 왜 중소 게임사는 살아남기 어려운가

원신 스네즈나야 업데이트 - AAA급 퀄리티의 기준을 세운 게임
원신 스네즈나야 업데이트 - AAA급 퀄리티의 기준을 세운 게임

2020년 9월 원신이 출시된 이후, 서브컬쳐 게임 시장의 눈높이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른바 'AAA급 서브컬쳐 게임'이라는 새로운 기준이 생긴 것이다. 원신에 이은 붕괴: 스타레일, 젠레스 존 제로, 경쟁사 쿠로게임즈의 명조: 워더링 웨이브까지, 유수의 3D 그래픽 서브컬쳐 게임들은 6주 단위의 살인적인 업데이트 스케줄을 유지하며 유저들의 시간을 과점하고 있다.

개발비도 마케팅 비용도 수백억 원 규모로 차원이 다르다. 중소 게임사가 이 수준의 퀄리티와 업데이트 속도를 따라잡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문제는 과포화 상태인 서브컬쳐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살기'가 없다는 점이다. 그래픽과 연출은 이미 중국의 자본력이 압도하는 상황이고, 블아·니케 개발진처럼 오랫동안 이 분야를 파고들며 '내공'을 쌓은 팀이 아니면 차별화가 어렵다.

결국 단순한 개발력의 문제가 아니다. 수년간 서브컬쳐 분야에 집중하며 쌓아온 노하우와 감각,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할 자본력이 모두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4. 운영 노하우, 또 하나의 진입장벽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 4년 넘게 상위권을 유지 중인 장수 타이틀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 4년 넘게 상위권을 유지 중인 장수 타이틀

개발도 어렵지만, 운영은 더 어렵다. 서브컬쳐 게임은 단순히 좋은 게임을 만들어 출시하면 끝이 아니다. 유저들과의 소통, 캐릭터 밸런스 조정, 스토리 업데이트의 타이밍과 퀄리티, 이벤트 기획까지 운영의 모든 영역에서 높은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10년 넘게 서비스 중인 페이트/그랜드 오더, 4년 넘게 상위권을 유지하는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가 좋은 예다. 이 게임들은 오랜 운영 경험을 통해 유저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타이밍에 어떤 콘텐츠를 제공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반면 새로 진입하는 게임사들은 이런 노하우가 없다. 출시 초기의 허니문 기간이 지나면 유저 이탈이 시작되고, 한 번 이탈한 유저를 다시 불러오기는 매우 어렵다. 서브컬쳐 유저들은 자신이 '덕질'하는 게임에 깊이 몰입하지만, 그만큼 실망하면 빠르게 떠나기도 한다.

"서브컬쳐가 붐이라고 여기저기 새로 만들고 있지만, 대부분 좋지 않은 성적으로 빠르게 서비스가 종료되는 게 반복되고 있다." 이것이 현재 시장의 냉정한 현실이다.

5. 플랜B로는 안 된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

승리의 여신: 니케 - 한국 서브컬쳐의 자존심
승리의 여신: 니케 - 한국 서브컬쳐의 자존심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 게임사들의 접근 방식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한국 게임사들에게 서브컬쳐는 '리니지'로 대표되는 MMORPG의 흥행이 예전 같지 않자 장르 다각화 차원에서 선택하는 '플랜B'인 경우가 잦다."

"자본과 인력 면에서 앞서는 중국 개발 스튜디오들이 1순위로 목숨 걸고 만드는 게임을, 플랜B로 상대하려 하니 경쟁이 되기 어려운 것이다." 서브컬쳐 게임은 '돈 된다니까 한번 해볼까' 식의 마인드로 접근해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블루 아카이브를 만든 넥슨게임즈, 니케를 만든 시프트업은 오랜 시간 서브컬쳐 분야에 집중해온 팀이다. 데스티니 차일드, 스텔라 메이든 등을 거치며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가 있었기에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었다.

단순히 캐릭터를 예쁘게 그리고, 가챠 시스템을 넣는다고 서브컬쳐 게임이 되는 게 아니다. 유저들이 캐릭터에 감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 세계관, 그리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6. 뾰족한 삼각형 전략, 틈새를 파고들어야

러브앤딥스페이스 - 여성향이라는 틈새 시장에서 성공
러브앤딥스페이스 - 여성향이라는 틈새 시장에서 성공

그렇다면 중소 게임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업계에서는 '뾰족한 삼각형' 전략을 제시한다. "작은 게임이 틈새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전반적으로 무난한 육각형을 만드는 대신, 날카로운 모서리를 극한으로 깎아 특정 이용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

중국 게임들은 막대한 자본을 앞세워 다수의 대중을 지향하는 형태로 게임을 설계한다. 한국은 여기에 정면 대결하기보다 틈새를 기민하게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5년 글로벌 매출 2위를 차지한 러브앤딥스페이스는 여성향이라는 틈새 시장을 공략해 대성공을 거뒀다. 트릭컬 리바이브가 일본에서 어느 정도 선전할 수 있었던 것도, 기존 대작들과는 다른 독특한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잘하려고 하기보다, 한 가지를 압도적으로 잘하는 게임. 그것이 승자독식 시장에서 살아남는 방법일 수 있다.

마치며: 붐은 끝났지만, 기회는 있다

서브컬쳐 시장의 위기라기보다는, '서브컬쳐가 잘 된다고 너도나도 뛰어든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시장 자체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지만, 그 성장의 과실을 가져가는 것은 소수의 승자뿐이다.

미호요의 독주, 일본 IP 게임들의 롱런, 그 사이에서 니케와 블루 아카이브가 보여준 K-서브컬쳐의 가능성. 이 구도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한국에서 새로운 서브컬쳐 대작이 나오려면, '플랜B'가 아닌 진정한 '올인'이 필요하다.

2026년에도 엔씨소프트의 리밋 제로 브레이커스 등 기대작들이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히 출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압도적인 퀄리티, 차별화된 매력, 그리고 오랜 운영을 버틸 수 있는 체력까지. 모든 것을 갖춰야만 승자독식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서브컬쳐 시장은 위기가 아니다. 다만, 진입장벽이 하늘 높이 치솟은 것뿐이다.

목록 다음 ›
메뉴